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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나는 원래 흔적을 잘 지우는 사람이다.

이상한 편집증 같은 게 있어서-


그러나 어제는 사라진 흔적을 되찾기 위해 40만원의 대가를 치뤘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액수를 지불하며 이게 잘한 짓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우 이거 안되겠는데요, FAIL이 바로 뜨네요. 하드를 교체해야 할 것 같아요. 데이터 복구도 따로 하시구요.'


스크린 정중앙에 새빨갛게 뜬 FAIL이라는 글자를 보고 순간 벙쪘다.

지금 이게 뭐지, 왜 갑자기?


나는 사소한 것에 의미를 하나씩 부여하기 시작해 그것을 엄청난 것으로 만드는 몹쓸 재주가 있다.

자꾸 FAIL이라는 것만 기억이 났다.

데이터를 버린다=하드도 바꿔=새 시작?

너는 지금 FAIL이니까 다 잊고 새로 시작하라는 소리인가


모든 걸 다 버리기엔 아직 미련이 남은 모양이었는지

백업도 안해놓고 뭐했냐는 엄마의 핀잔에도 반박하지 못하고 복구를 신청했다.


오늘 백퍼센트 복구된 노트북을 다시 받았고,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안도감이라는 것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근데 웃긴 건 뭔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한테 왜이래

뭐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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