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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es ha 2015. 5. 23. 02:35


뭔가가 잘못된 게 틀림없는데 그 뭔가가 뭔지 모르겠다.


어떤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이후로 내가 굉장한 속물로 느껴진다.

다운튼 애비를 보면서 such a snob 아 갑갑한 사람들 진짜 못 봐주겠네 이랬는데 그것에 버금가는 느낌을 내가 내게 받고 있다.


다시 첫 문장으로로 돌아가면 이렇다. 이것은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다. 예전에는 나는 좁지만 깊은 인간관계를 갖고 있어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깊기는 개뿔 좁고 얕아 빠진 관계뿐이다.

언젠가 내가 타인을 유리처럼 다뤄서 타인도 나를 유리처럼 다루는 게 아닐까 라고 쓴 적이 있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본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그 누군가가 나에게 엄청나게 큰 실망을 하고 나를 떠날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변에서 이를테면 친구들이-이쯤 되면 친구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지만- 내게 하는 말은 여성스럽다-이게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똑똑하다, 이성적이다 등 고급스러운 포장지 같은 것들뿐이다. 그러나 맞는 게 없어 보인다.

소위 파이어 에그 친구라고 할 만한 친구도 없다. 애정을 듬뿍 담은 욕을 나누는 친구가 없다는 말이다. 가끔 욕을 하고 싶다. 어감이 좀 이상한데 무슨 말인지 알겠지-모른다면 나를 무슨 욕쟁이로 생각할 텐데 아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친구들은 나를 욕도 못하는 애로 알고 있을 것이다.

암튼 이렇게 가식과 가면으로 뒤덮인 관계들 사이에서 타인을 유리알 다루듯 겉치레만 하고 있으니까 이 꼴이 난 것 같다.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 받을 때 자주 오랜만이다 라는 말을 하는데 친한 친구라고 할 만한 애들과도 연락이 뜸하다. 하루 종일 카톡-고딩 때는 문자-을 붙잡고 있는 애들을 보면 신기했다. 무슨 얘기를 저렇게 주고받는 걸까, 누가 저렇게 받아치는 걸까가 궁금했다. 알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건데 말이다. 나는 내가 그렇게 했다면 상대방이 나를 귀찮아하지 않을까를 가장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누군가에게 맡겨본 적이 없다.

베스트 프렌드라는 기지배들은 먼저 메시지를 던지지도 않는 편이다. 6:4 정도로 내가 먼저 연락을 했다. 근데 이것도 옛날 얘기다. 요 몇 년 사이엔 나는 그냥 연락을 하지 않는다. 오면 받고 아님 말고. 생일 같은 날엔 먼저 챙기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만나도 할 말이 없다. 친구를 만나고는 싶은데 만나면 할 말이 없어서 뻘쭘하고 민망하고 어색하다. 그러나 또 헤어질 땐 아쉽다. 그날은 그냥 걔가 나를 어느 정도 속물로 치부하고 있다고 느꼈다. 걔가 한 어떤 말을 옮길 순 없지만 걔는 내게 너는 너무 고상하고 우아해서 그런 데는 안 좋아할 걸 이런 뉘앙스로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부터 so judgmental 했던 나의 나쁜 습관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 같다.


오랜 친구들은 다 떠난다. 이사는 기본이고, 이민을 가거나 결혼을 해서 자주 만날 수 없는 상황이 항상 마련된다. 하늘(?)이나 세상(?)의 흐름이 나를 혼자로 만들고 있다고 느낄 정도다. 곁에 아무도 없게끔 해서 나를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로 만드는 게 누군가의 목표가 아닐까 하는 아주 이상한 생각 말이다.


왜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를 보면 볼수록 모르겠다. 그러니 네가 나를 안다고 생각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