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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enchant for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것은 꽤 중요하다. 취향은 단순히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나를 살피고, 발견하고, 이해하고, 알아가는 일이다. 일상의 결을 다듬고 나만의 고유한 개성을 갖는 일, 은밀한 즐거움을 누릴 삶의 동반자를 만드는 일,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는 일이다. 입고 있는 옷, 손에 든 가방, 입술 색깔, 아이라인의 방향, 헤어 스타일, 신발의 굽, 지갑 크기, 카드 내역서, 펜의 굵기, 휴대폰 커버, 방의 벽지, 커피의 종류, 냉장고 속 식재료, 책장에 꽂힌 책, MP3 노래 목록, 자주 가는 카페, 대화의 주제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취향이 묻어 있다. 취향은 한 개인의 생활방식, 심미안, 미적 감수성, 사고 체계, 정체성, 세계관이 발현된 축도이다.

_twitter @wjhyn



자존감의 회복을 위해 사람들이 거머쥐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취향(taste)'이었다. 그러나 이때 취향이란 진정성의 인간이 자아를 표현하고 공동체와 대화를 하는 도구로 삼았던 취향, 자신과 세계 사이의 거리를 조절하는 척도로 삼았던 취향과는 사뭇 다르다. 신자유주의에서 취향을 통한 자아 표현은 소비에 의존하는 자아 과시로 전락했고, 공동체와의 대화는 폐쇄적 취향 공동체의 자기 확신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취향은 자아와 공동체와의 연결을 단절시켰고, 자아가 스스로를 갱신하고 고양시키는 변증법적 운동을 중단시켰다.

취향은 이제 스노비즘의 열역학 연료로 소모되고 충전된다. 스노비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아가 세계를 '좋아요'와 '싫어요'의 일람표로 파악하고 그 출구 없는 일람표의 미로에서 맴돌며 자신의 우월함을 입증하려는 프로젝트이다. 스노브(snob)에게 세계는 전쟁터이다. 취향을 무기로 만인이 만인과 적대하는 전쟁터이다. 우리는 「스노비즘」에서 단언했다. 신자유주의의 체제에서는 그 누구도 스노비즘의 열역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우리는 2000년대 이후의 스노브를 '합리적 스노브', '비관적 스노브', '룸펜 스노브'로 구별했는데, 이는 '취향'에 기대어 자신의 우월감을 확보하려는 상층계급, 지식인-예술가, 하층계급이라는 계급적 분류법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스노비즘」은 그 외의 인간들, 취향이라는 사치품을 소유하고 소비할 여력이 없는 나머지 인간들을 생존과 생계에 연연하는 동물적 존재로 파악했다.

_그을린 예술 (심보선)




좁아지고 있다. 나의 세계가, 나의 사고(思考)가, 내가.

'가지도 못 하는데 뭐, 사지도 못 하는데 뭐, 갖지도 못 하는데 뭐' 같은 이유로 아예 생각의 접근조차 막아 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너무 한심하고, 불쌍하고. 이해는 하지만 다시 이해할 수 없는 내 자신에 화를 낼 여력조차 없다.

취향이랄 게 사그라든지 오래다. 그걸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이 당장 없기 때문에. 나는 너무 찌그러져 있다. 인스타그램은 정말 몰개성한 세계 같아서 너무 보이려고만 하는 곳 같아서 지워버렸다가 최근에 다시 깔았는데 내가 또 이 피곤한 세계에 발을 들이다니 좀 어리석은 처사였지 싶다.

엊그제는 아는 사람이 사진에 '지은씨인가요..?' 하고 댓글을 달아서 놀랐다. 셀카는 전혀 없는 피드였는데 내가 찍은 사진에서 나란 걸 느낄 수 있는 무슨 감성 같은 게 취향 같은 게 묻어나나 싶었다.

대학 1학년 1학기때 한 교수님이 자기소개를 시켰다.(자기소개 존니스트 싫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자신을 나타내는 단어 세 개를 꼽으랬나 그랬는데 마지막 단어만 또렷이 기억난다. '여유'였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늘 선생님으로부터 듣던 말은 '지은이는 항상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항상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쉽게 나를 풀어놓지 않았다. 않은 건지 못한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오만가지 생각과 걱정을 하다 보면 항상 근원으로 가는 것 같다. 왜 그랬는지. 하지만 답을 안 적은 없었다.

글이든 돈이든 자꾸 써 버릇해야 잘 할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있다. 내 취향을 찾아가는 길 이렇게 험난할 줄 나만 몰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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